12월은 제법 한적하게 보냈다. 잠시 여유를 가지는 동안 MBTI 테스트를 다시 해보았다. 원래는 ENTJ였는데 거짓말처럼 ENFP가 나왔다. 일할 때는 머리를 싸매고(T) 계획을 잔뜩 세웠다면(J), 놀 때는 세상 신나게(F), 즉흥적(P)으로 논다는 것인가? 제법 솔직해서 재미있었다. 이 오묘한 니트를 구매한 것이 12월이니, 아마 이 신나고 들뜬 즉흥적인 기질 탓을 할 수 있겠다.
이 니트는 미국의 메인(Maine)주 워터빌(Waterville)이라는 도시에 연고를 둔 브랜드 Hathaway가 90년대에 생산한 제품이다. 여러 색의 실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짜냈다. 굵은 실로 엮어 꽤나 단순하다 싶겠지만, 놀랍도록 디테일이 살아있다. ‘핸드 인타샤(Hand Intarsia)’ 공법이라고 한다더라. 보통 3-4개 조합의 무늬나 모양은 기계로도 수월하게 하지만, 그 이상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니 분명 더욱 더 정성이 들어갔을 테다.
니트의 앞(좌측)과 뒤(우측). 가만 보니 벙커 샷이다.
분명히 이 옷으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라는 확신에 차 구매했다.
여유와 멋이 느껴지는 남성들이 그라운드에서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담아냈다. 앞과 뒤가 다른 점도 또 하나의 재미다. 앞에는 멋지게 샷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가만 보니 벙커 샷이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뒤에는 앞의 샷이 깔끔했는지 그라운드를 경쾌하게 거니는 뒷모습을 다 담아냈다. 작금의 시절에 나오는 기성복 중에 앞과 뒤에 두 배로 정성을 들인 옷이 흔하던가?
외투에 레이어드 했을 때 앞만 보고 “옷 좀 이쁘네.” 하고 생각했다가, 외투를 벗으면 빼꼼히 나오는 뒤를 보고 두 번 감탄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벌써 기대된다. 생각보다 예쁘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지. 그리고 분명히, “아, 근데 너 골프 치던가?” 하고 물어본다면 “아, 전 테니스 쳐요.” 하며 너스레 떨 준비까지 다 되었다.
그냥 우연히 나에게 온 빈티지 옷 한 벌이라면 그 감상은 이쯤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를 2022년의 마지막 하루에 이렇게 책상과 키보드 앞으로 불러들인 건 Hathaway 브랜드가 지닌 긴 스토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형적인 시골이라 불리는 Maine, 그 중에서도 고즈넉한 Waterville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고,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함께 하는 브랜드다.
**Hathaway Shirt Company (이하 Hathaway)**는 Waterville의 한 거리에서 1853년 시작되어 무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군복을 납품하던 유서 깊은 브랜드이다. 이후에는 RTW (Ready To Wear) 셔츠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이며 사업을 이어가지만, 초기에는 지역 기반이라는 영세한 규모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Hathaway의 변화를 주도한 Ellerton Jette 당시 CEO와 (좌측),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던 마케팅의 거장 David Ogilvy (우측). 이들의 만남은 훗날 Ogilvy의 대표작 중 하나로 언급되는 유명한 광고를 탄생 시킨다.
변화는 생각보다 한꺼번에 찾아왔다. 당시 CEO였던 Ellerton Jette는 Hathaway라는 브랜드를 보다 키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바로 전국적인 광고 마케팅이었다. 놀랍게도 이 기업은 지난 100년 간 단 한번도 제대로 된 광고를 집행한 적이 없었다. 결국 제품을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브랜드로 키울 수 있는 열쇠는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마케팅 에이전시인 Ogilvy & Mather의 창립자 David Ogilvy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