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골프냐 테니스냐, 그것이 문제로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곤 했다. 예전부터 공과는 친하지 못해서, 기왕이면 좀 더 큰 공이 다루기 쉽겠다는 생각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테니스로 정했다. 벌써 7개월이 지났고, **‘테린이’**로 테니스에 대한 재미를 날로 더해가는 나날이다.
운동복이라는 영역은 어쩌면 일상의 패션보다 더 복잡하다. 운동에 충실하겠다는 의지와 스포티한 패션 센스는 서로 반비례한다. 적당한 기능성 반바지에 오버핏 반팔 티셔츠를 아무거나 하나 입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막아줄 나일론 캡을 대충 눌러쓴다. 흔치 않은 왼손잡이라는 데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며 왼손 팔목에는 꼭 하얀색 아디다스 손목밴드를 찬다. 웃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차마 나이키 손목밴드는 못 차겠더라. (아차, 모자는 나이키다.) 테니스화가 아디다스라서.
하얀색 갑피에 검은색 삼선이 흐르는 테니스화다. 종종 이 손목과 발끝의 하얀색을 온 몸에 휘감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위에는 라코스테나 프레드 페리의 화이트 피케 폴로티를 입고, 아래는 살짝 심심하게 휠라의 화이트 쇼츠를 입어서 강약도 조절하고, 위에는 뽀글뽀글하고 뽀송한 하얀 헤어밴드를 차는 거다. 라켓 면이 열려서 위로 떠 버린 내 공처럼 뜬 구름 잡는 상상이다. 하얀색으로 점잔을 피우기에는 꽤나 다채로운 테니스 룩이 많기도 하다.
양 선수들이 ‘Tennis Whites’ 드레스 코드에 맞춰 위아래 모두 백색으로 통일되게 입은 모습. 솔직히, 좀 멋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테니스는 오늘날까지도 종종 위 아래 ‘담백한’ 백색으로 통일된 드레스 코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Tennis Whites’**라고 불리는 복식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야외코트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반사하여 좀 더 체온을 조절하기 용이하다는 실용적인 이유부터, 땀에 젖어 얼룩덜룩한 모습을 점잖지 못하다며 용납 못한 전통적인 이유까지.
제일 솔직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일상 안팎으로 ‘새하얀’ 면모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화이트칼라들을 위한 귀족의 스포츠였기 때문일 테다. 물론, 그 때 그 시절의 많은 스포츠들은 귀족적이었을 것이다. 노동이 아닌 이유로 시간을 내며 땀을 흘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웰니스는 많은 이들에게 허용되지는 않았을 테니.
패션에 있어 “한 세대의 스포츠는 다음 세대의 캐쥬얼이 된다.” 는 말을 정말 좋아한다. 패션도 결국 라이프스타일이 외부로 표출되는 방식일 테니, 비단 패션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수하고 특별한 것들이 일상으로 조금 더 편해지고, 조금 더 익숙해지는 과정은 분명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위해서는 한 번의 극적인 시도가 필요한 법. 오늘은 그 이야기를 위해 글을 적는다. 담백한 백색(Tennis Whites)의 질서에 다채로운 파란을 일으킨 누군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서 애시(Arthur Ashe)는 미국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이자, 파격적인 패션 센스를 선보인 코트 위의 패셔니스타이기도 했다.
아서 애시(Arthur Ashe)는 미국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이다. 그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시기에 가장 ‘백색의 스포츠’로 여겨졌던 테니스 코트 위에서 빛난 스포츠맨이었다. 3번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따내는 위업을 달성하며 흑인들은 열등하다는 세간의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다른 한편으로, 파격적인 패션 센스를 선보인 코트 위의 패셔니스타로 백색의 질서에 도전하기도 하였다. 애시 본인의 표현대로 그는 “라이스 푸딩 위의 건포도(noticeable as the only raisin in a rice pudding)” 같은 독특하고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그렇다고 그를 단순히 옷 잘입고 스포츠 실력이 출중한 스포츠 스타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테니스 코트 안에서만큼이나 바깥에서도 다채로움을 향한 그의 행보는 끊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장 문제로 인해 테니스 라켓을 내려놓게 된 후, 그는 본격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열렬한 인권 운동가로서 행보를 이어간다.